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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격변기에 강력한 개혁 정책을 펼쳤던 흥선대원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흥선대원군은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의 아버지로, 고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섭정으로서 조선의 정치를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흥선대원군은 누구인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년 ~ 1898년)의 본명은 이하응(李昰應)입니다. 그는 왕족이었지만, 당시 조선은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가들이 권력을 장악한 세도 정치 시기였기에 불우한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고종이 즉위하면서 섭정으로 권력을 잡게 된 흥선대원군은 강력한 개혁 정책을 추진하여 조선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주요 업적 및 정책
흥선대원군은 약 10년간(1863년~1873년) 섭정으로서 조선의 내정과 외교에 걸쳐 다양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 왕권 강화 정책
- 세도 정치 타파: 안동 김씨 등 세도가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붕당을 초월한 인재를 등용하여 탕평책을 계승하려 했습니다.
- 비변사 폐지: 비변사의 기능을 축소하고 의정부와 삼군부를 부활시켜 행정 기능과 군사 기능을 분리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 경복궁 중건: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을 재건하여 왕실의 위엄을 되살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백성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워 원성을 사기도 했습니다.
- 민생 안정 정책
- 삼정 개혁: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還穀)의 문란을 바로잡아 농민 생활의 안정을 꾀했습니다. 특히, 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호포제(戶布制)를 실시하여 군정 개혁에 힘썼고, 사창제(社倉制)를 통해 환곡 제도의 폐단을 개선하려 했습니다.
- 서원 철폐: 당쟁의 근거지이자 농민 수탈의 원인이 되었던 서원을 대폭 철폐하여 국가 재정을 확충하고 민생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 외교 정책
- 쇄국 정책: 서양 열강의 침략에 맞서 통상 수교 거부 정책(쇄국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병인양요(丙寅洋擾)와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거치면서 척화비(斥和碑)를 전국에 세워 쇄국 의지를 굳건히 했습니다.
흥선대원군에 대한 평가
흥선대원군은 강력한 개혁 정책을 통해 조선 후기의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했으나, 쇄국 정책과 경복궁 중건 등 일부 정책은 백성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의 정책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리고 있지만, 격변의 시기에 조선 사회를 개혁하려 했던 그의 노력은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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