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한 인물, 바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한국 이름 원두우(元杜尤) 선교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특히 교육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으실 텐데요, 그는 바로 연세대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낯선 땅에 핀 믿음의 씨앗
1859년 미국에서 태어난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1885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머나먼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당시 조선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죠. 그는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 중 한 명으로서, 척박한 땅에 믿음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부의 선교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기에, 그는 제중원(지금의 세브란스병원 전신)에서 영어와 과학을 가르치며 간접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에도 그는 환자들을 돌보고 복음을 전하는 데 힘썼다고 합니다.
교육으로 미래를 열다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바로 교육 사업입니다. 그는 단순한 종교 교육을 넘어, 조선의 젊은이들이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헌신했습니다.
- 고아를 위한 학교 설립 (1886년): 이것이 훗날 연세대학교의 뿌리가 됩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던 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 연희전문학교 설립: 경신학교의 대학 과정을 발전시켜 설립한 연희전문학교는 한국 근대 교육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많은 인재들이 이곳에서 배움을 얻고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했죠.
말씀으로 마음을 적시다
교육 사업뿐만 아니라,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한글 성경 번역에도 깊이 관여하셨습니다. 1905년 신약성경, 1911년 구약성경 완역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입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또한, 기독교 서회(성교서회)를 창립하여 기독교 서적을 출판하고 보급하는 데 힘쓰며 문서 선교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어둠 속의 등불이 되다
일제 강점기,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한국 민중과 아픔을 함께하며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를 넘어, 한국 사회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자 했던 진정한 친구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대에 걸친 헌신, 그리고 기억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헌신은 그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3대에 걸쳐 한국에서 교육, 의료 선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했으며, 그의 4대손은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삶과 업적을 통해, 한 사람의 헌신이 어떻게 한 나라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푸른 눈의 선각자가 뿌린 교육의 씨앗은 오늘날 연세대학교라는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고, 그의 사랑과 헌신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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