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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시대, 불꽃 속에 피어난 또 다른 삶의 마무리, '다비(茶毘)'

by 이루엘 2025.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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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불꽃 속에 피어난 또 다른 삶의 마무리, '다비(茶毘)'
출처 : 픽사베이 / 조선시대, 불꽃 속에 피어난 또 다른 삶의 마무리, '다비(茶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선시대의 장례 문화와는 조금 다른,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흥미로운 장례 방식인 '다비(茶毘)'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 보려 합니다. '다비'라고 하면 아마 불교식 화장을 떠올리실 텐데요,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과연 다비가 어떻게 행해졌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다비, 그 깊은 불교적 의미를 담다

'다비'는 산스크리트어 'Jhapita'에서 유래한 말로, '불태우다', '연소하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단순한 소각을 넘어, 불교에서는 죽은 이가 삶의 번뇌와 미혹을 모두 불태워 해탈과 열반에 들기를 염원하는 숭고한 의식으로 여깁니다. 부처님께서도 다비로 장례를 치르셨기에, 스님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장례 절차로 자리 잡았죠.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다비는 어떻게 존재했을까?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삼아 효를 중요시하고, 부모의 시신을 훼손하지 않는 '토장(土葬, 매장)'을 이상적인 장례 방식으로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다비는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 조선 초기 왕실의 다비: 의외로 조선 초기에는 왕실에서도 다비가 행해진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 시대 불교의 영향이 남아있던 시기에는 왕실에서도 다비식을 거행하는 경우가 있었죠. 하지만 유교의 기틀이 확고해지면서 점차 토장이 주류가 되었고, 왕실의 다비는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 스님들의 다비: 유교가 국교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교계에서는 여전히 다비가 일반적인 장례 방식이었습니다. 불교 승려들은 불교의 교리에 따라 죽음 이후에도 몸을 태워 번뇌를 소멸하고 열반에 이르고자 했기에, 다비는 승려들의 필수적인 장례 절차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현재까지도 큰스님들의 다비식을 뉴스를 통해 접하곤 하죠.
  • 민간의 화장 문화: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화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 토장이 효의 실천으로 강조되면서 화장은 점차 비주류로 밀려났죠. 특정 지역의 풍습이나 이민족의 장례 문화에서는 화장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보편적인 조선의 장례 문화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다비식, 그 엄숙하고 신성한 절차

조선시대 다비식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불교 다비식은 당시의 의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비는 단순히 불로 시신을 태우는 행위를 넘어,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엄숙하고 신성한 절차를 거칩니다.

  1. 준비 의식:
    • 입감(入龕): 돌아가신 스님의 시신(불교에서는 법구(法具)라고 부릅니다)을 정갈하게 닦고 법복을 입힌 후 관에 모십니다.
    • 발인(發靷) 및 운구(運柩): 법구가 담긴 관을 운구하여 다비장으로 이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스님들은 염불을 외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합니다.
  2. 본 의식:
    • 연화대(蓮花臺) 조성: 다비장에 도착하면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불이 잘 탈 수 있도록 참나무 장작 등을 쌓아 원통형의 단상인 '연화대'를 만듭니다. 연화대는 말 그대로 연꽃 모양의 대좌를 의미하며, 법구를 관째로 연화대에 올리거나, 가사만 덮은 채 안치하기도 합니다.
    • 거화(擧火) 및 하화(下火): 주례하는 스님이 큰 소리로 "불 들어갑니다!" 등의 외침과 함께 연화대에 불을 붙입니다. 이 순간은 고인의 고통과 번뇌가 모두 소멸하고 열반에 드는 것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식입니다. 불길이 타오르는 동안에도 스님들은 염불을 외며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3. 마무리 의식:
    • 습골(拾骨) 및 쇄골(碎骨): 불길이 잦아들고 화장이 끝나면 남은 유골을 수습하는 절차입니다. 주로 제자들이 흰 천을 들고 젓가락으로 뼈를 조심스럽게 주워 모읍니다. 이때 고인의 높은 수행력을 상징하는 '사리(舍利)'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수습된 뼈는 잘게 부수어 정화합니다.
    • 산골(散骨) 또는 봉안(奉安): 수습된 유골은 강이나 바다에 뿌리거나(산골), 사찰의 부도(浮屠)나 납골당에 봉안하여 고인을 영원히 기립니다.

조선시대 다비 문화는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적이었던 시기에도 불교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이는 단순히 시신을 처리하는 방식을 넘어, 당시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 그리고 종교가 사회에 미친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조선시대의 다비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흥미로운 조선의 풍습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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